
아이들과 함께 했던 목포 여행 중에 우연히 들렀던 카톨릭목포성지의 메모리얼타워를 소개 드리겠습니다.
카톨릭 목포성지의 산정동 준대성전은 몇일 전에 포스팅을 올렸습니다.
메모리얼타워에 너무 예쁘고 뜻깊은 말씀들이 많이 있어서 별도로 포스팅을 올리고 싶어서 사진을 아껴두었다고 오늘 올려보려 합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메모리얼타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그림과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빙글빙글 돌며 그림과 말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천장 모습도 아주 멋있었습니다.
특별한 덧붙임 없이 사진으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카톨릭 목포성지
1896년 11월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가 전라도 직역을 순방하며 목포 본당(현재 산정동 준대성전) 신설을 결정하고 1897년 5월 8일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조유도신부가 부임합니다. 목포 개항과 함께 전남 지역 최초의 모 본당이 된 목포 본당은 전남지역은 물론 제주지역까지 초기 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33년 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파견되어 광주교구 설정을 준비하고, 1937년 4월 13일 대구대목구로부터 지목구(교구에 준하는 개별교회)로 설정된 목포 본당은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오웬신부가 임명되고, 교구청은 목포시 산정동 97번지로 하였습니다. (현, 역사박물관)
일제 강점기에는 모 파트리치오 주임신부와 임오웬 몬시뇰 교구장이 체포, 감금, 투옥되었으며 본당과 교구청은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었습니다.
또한 6.25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막사로 징발, 저항하던 세분의 사제가 체포되어, 대전에서 순교한 사목지이기도합니다.(현재 근, 현대 신앙의 증인: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청원중)
1953년 레지오마리애가 광주교구 제5대 교구장인 하롤드헨리 신부에 의해 도입된 이곳은 한국 레지오마리애의 본향이기도 합니다.
참 여러 풍파를 겪었던 카톨릭목포성지였네요.
성지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보고 정리하며 카톨릭목포성지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포 가족여행 중 들렀던 카톨릭목포성지 메모리얼타워 방문기였습니다.
다녀온 후 정리하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 일정 때문에 준대성전과 메모리얼타워만 들렀다 왔는데 다음 여행에는 카톡릭목포성지역사박물관과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도 가봐야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산정동 준대성전에서 미사도 드리구요.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 미사중에 항상 하시는 말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카톨릭목포성지 메모리얼타워는 어떤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나요?
메모리얼타워는 주차장에서 내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그림과 말씀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빙글빙글 돌며 그림과 말씀을 감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목포 본당은 언제 신설이 결정되었고 초대 주임 신부는 누구였나요?
목포 본당은 1896년 11월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신설이 결정되었습니다. 1897년 5월 8일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조유도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습니다.
목포 본당은 전남 및 제주 지역 초기 교회에서 어떤 구심점 역할을 했나요?
목포 본당은 목포 개항과 함께 전남 지역 최초의 모 본당이 되었습니다. 전남 지역은 물론 제주 지역까지 초기 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카톨릭목포성지는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당시 어떤 역사적 풍파를 겪었나요?
일제 강점기에는 본당과 교구청이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었고, 6.25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막사로 징발되어 저항하던 세 분의 사제가 대전에서 순교했습니다.


카톨릭목포성지 산정동 기념성당 준대성전에 다녀왔습니다.




